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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少年(미소년) - 3부상
16-01-22 17:09 759회 0건
우경이야기/宇京物語 1券. 美少年 3부-첫 등교

우쿄는 세수를 마치고 면 티와 추리닝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기
방으로 향하다가 수진의 방을 우연찮게 흘끔 들여다 봤다.
수진이 화장대에 앉아서 거울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수진짱, 잘 잤니? >
<아 오빠!! 응. 오빠는? >
<나도, 근데 왜 그래? >
<어떤 머리모양을 할까 고민 중이야. >
우쿄는 여동생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찰랑찰랑한 긴 생머리를
잠시 보다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럼, 내가 한번 봐줄까? >
<그럴래? >
우쿄는 동생의 방으로 들어와서 수진에게 빗을 건네 받아서
수진의 머리를 가지런하게 빗어줬다.
<와!! 오빠, 머리를 엄철 잘 빗네!! >
<그래? 가끔 누나들 머리를 빗어드렸지. >
석주는 아들에게 건네줄 것이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그 광경을 목격했다.
<웬 여사잠도史箴圖야? >
사내녀석이 아침 댓 바람부터 한다는 짓거리가 제 여동생
머리 빗기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여동생한테 다정하고
곰상맞게 대하는 게 사랑스럽게 느껴져 잠자코 지켜봤다.
남성우월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한 가문에서 자란 애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조카들 같으면 여자형제가 있으면 남자랍시고
괴롭히거나 장난질 치기 바쁘지, 저렇게 예뻐해 주거나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수진도 명절 등으로 전주로 가면 유난히나 예쁜 외모에다
또 외가에서 물려받은 일본인의 혈통때문에라도 짓궂은
사촌남동생들의 표적이 되기 쉬운데 다행히 완력腕力 등이
남자애들 못지 않고 머리도 좋아서 조카들이 수진에게
장난을 걸다가 되려 당하기 일쑤다.
작년에 우쿄가 사촌동생들한테 당한 수모는 그런 게
쌓여서인지도 모르겠다.
여성적인 분위기가 강한 외가에서 여형제-대개 누나들한테
둘러싸여서 자라서 저렇게 여동생에게 다정한 건지도
모르지만 석주가 보기에도 우쿄는 기본적으로 온순하고
섬세하며 다정다감한 성격이다.
아연한 점은 이 여리고 정 많은 아이가 한편으로 한번 반감을 품거나
하는 대상에게 용서 없이 매몰차고 차갑게 대하는 매서운 면도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유일하게 친가에게서 물려받은 듯한 형질인 강직하고
고집이 센 성격이 거기에 보태지면 대책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문제는 그 곧고 차가운 면이 바로 혈통상 자기 친가에게
잔뜩 날이 선 칼날을 겨누고 있다는 점이다.
석주로서는 유감스럽게도 친가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평가가 없었다.
우쿄는 수진의 머리카락을 빗어준 뒤 양 귓가의 머리를
조금 나눠서 귀와 볼 사이에 두고 하나씩 작은 리본으로
묶어서 애교머리를 만 든 뒤 나머지 머리는 끝에서 한
뼘 정도 위에서 모아서 리본으로 묶었다.
석주는 그 머리모양이 눈에 익었다.
바로 미코가 신혼 때까지 하던 헤어스타일이었다.
예쁜 드레스와 함께 잘 어울렸지만 처음 볼 때는 사뭇
왜색倭色 짙은 머리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간만에 보니
무척 예뻤다.
평소의 말괄량이 딸이 요조숙녀窈窕淑女로 느껴질 정도였다
수진은 오빠가 만들어준 머리모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머, 예쁘다!!! >
<そう(그렇지)? 일본에서 누나들이 너 만할 때 자주하던
머리모양이야. >
< 정말? >
만족스럽게 여동생에게 만들어준 머리모양을 살펴보던 우쿄는
문득 여동생이 입고 있는 교복에 눈이 갔다.
<수진짱은 다리가 예쁘고 교복도 무척 귀여우니까, 교복의
스커트가 짧으면 예쁠 텐데…… >
<그런가? >
<거기다 루즈삭스나 오버니삭스 같은 걸 신으면 더 귀여울
거야. >
<그렇겠지? >
외딸로 커서 언니든 오빠든 동생이든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던 수진에게 우쿄는 여러 가지로 신선한
존재였다.
오빠이면서도 자기보다 약간 작은 키에 너무 어려 보이는
외모가 귀여운 동생 같고 성격으로는 마음씨 따뜻하고
착한 언니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친구들의 오빠나 여동생을 둔 사촌남동생들을
보면 대개 여동생들에게 심술궂고 못되먹게 대하거나 하는
게 보통인데 우쿄는 너무나 온화하고 상냥한 오빠인 것이다.
그런데 “귀여운 동생” 같다는 생각은 그저께의 일로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우쿄에게 수진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동생으로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한국생활을 해나가는데 더없이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인석아, 고추 떨어지것다!! 사내녀석이 아침부터 그렇게 할 짓이 없어? >
두 남매는 화들짝 놀랬다. 아버지가 언제 올라왔을까?

수진의 방을 나오고 석주는 웃으면서 아들에게 “에라 이 고추값도 못하는 녀석!! “
하고 손 날로 한방 때려주려는 시늉을 하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봉인된 투명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검은 색의 옷을 우쿄에게 건넸다.
<일단 교복 집에서 받아왔다만, 대학교 첫 등교 일에 이런 옷을 입어야겠냐?>
<그냥 다시 입어보고 싶은데 갖고 있는 게 입기가 작거든요. >
우쿄는 수줍게 아버지가 자못 불만스럽게 건네는 걸 받았다.
<모자도 만들어 줘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옛날에 아빠가
중고등학교 때 것 겉은 걸로 말이야. 그런데 그러려면 머리를
스님들처럼 아주 빡빡 깎아야 하는데......>
< お父さんは (아빠는)~~~>
우쿄는 눈살을 찌푸렸다.
새침한 여자아이 같아서 무척 귀여웠다.
그저께 밤의 부부관계 전에 아내가 한 말대로 아들이다
딸이다, 한국인이다 일본인이다 하는 틀에 박힌 관념을 버리니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한때 억지로 한국사람처럼 만들고
남자답게 만들려고 한 친가의 과욕에 내심 동조했던 게
너무나도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게 안 그래도 일본에서의 부모를 모두 잃어서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던 우쿄에게 여태 얼굴에 그늘을 지게 만들 만큼
정신적인 상처를 안기고 두 부부는 간신히 되찾은 아들을
다시 잃을 뻔 할 정도로 너무 후유증이 컸었던 것이다.
<늦겠다. 얼른 입고 내려와. >
석주는 우쿄의 볼을 가볍게 꼬집어주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우쿄가 아버지한테 받은 것은 일본에서 입던 고등학교 교복과
거의 같은 정장으로 지금 아버지의 고등학교 앞의 교복 집에
주문해서 만든 것이었다.
전에 병문안 왔던 혁의 말도 염두에 둔 것도 사실이지만 다시 입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우쿄가 그 교복을 입었던 기간이 1년2개월 안팎이었다.
최소한 대학교 첫 등교일 동안이라도 입고 싶지만 아깝기도 하고 해서
아예 정장으로 새로 만들었다.
실은 한국의 고등학교에서도 입었던 교복-일본 것과는 달리 신사복
같아서 일본 것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세련되게 보일-이 있지만
우쿄로서는 일본 쪽의 것이 더 애착이 가고 자신에게 훨씬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티와 추리닝을 벗은 뒤 하얀색 와이셔츠 위에 정장을 착용하고
매무새를 가지런히 한 뒤에 내려오자 석주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 뭐, 더 낫긴 한데......>
더 나은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중고등학교 때의 교복과는
스타일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와!! 캡 멋있다!!!>
맵시 있는 교복차림으로 아침식사를 하던 수진도 미코도 우쿄의
기품 있고 우아한 모습에 감탄했다.


석진은 학교 건물의 현관에서 우쿄를 발견하고 그가 더플코트 안에
착용한 정장에 의아해 하다가 정장이 사진에서 본 고등학교 교복과
거의 같은 것을 보고 혁이 한 말이 생각나서 황당해 했다. 안 그래도
-지금 복장에서 일본 고삐리 필을 풀풀 풍기는- 우쿄의 모습을 여학생들이
흘끔 보고 까르르 대면서 귀엽다고 쑤군대고 있었다.
<야!! 우경아!! 권 우경!! >
우쿄는 자신의 한국식 이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응시하고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은 그렇게까지 친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다른 사람이 자기 한국식
이름을 예사로 불렀다면 -전주全州의 일 때문에라도- 심히 불쾌할 것이다.
실은 딴에는 석진이 우쿄에게 좀 일방적으로 의형제입네 하면서
그러는 것도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석진은 친근하게 우쿄의 어깨를 껴안았다.
<짜식!! 오늘 내일 하더니만 안 죽고 살았구나? >
우쿄는 석진의-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들었다면 위협의 사촌쯤을
느꼈을- 약간 입이 건 말에 조용히 웃어넘겼다.
< 사람 많은 데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아줄래요? 듣기 싫으니까. >
<…..알았어. 근데, 이야!!! 너도 참 너다!! 그렇다고 진짜로 그걸 입었단
말이야? >
<……안돼? >
<아니. 어울린다는데야 안될 것은 없겠지만 …… 너도 그 선배가
어지간히 좋아진 모양이네. >
<엣? >
우쿄는 화들짝 놀랐다. 왠지 마음속이 뜨끔했다.
<아이!! 그건 아니에요!! >
<아냐? 근데 왜 그렇게 놀래고 그러냐? 너 좀 이상하다? >
< 變は何が(이상하긴 뭐가)? >
<어라? 말이 짧아지네? 너 많이 컸다? >
둘은 옥신각신하다가 그만 좌측에서 나오는 사람과 우쿄가 정면으로
부딪혀서 우쿄가 껴 안겼다.
<きゃ(꺅)!!! >
<あら(어머)!! >
순간적으로 부딪힌 사람이 들고 있던 서류철書類綴이 후두둑하고
떨어졌고 우쿄는 껴안긴 사람의 품에서 뭉클한 감촉이 느껴져서
상대를 살펴보고 아연실색했다.
우쿄를 껴안은 사람은 초미니 스커트와 상의, 안에 연 하늘색 남방에 얇은
넥타이로 된 감색 여성용 정장 차림의 짧은 헤어스타일에 무척 큰
키의 슈퍼모델 급의 초 미녀였다.
우쿄가 얼굴에 닿은 곳이 그녀의 풍만한 가슴팍이었던 것이다.
신고 있는 하이힐의 높이까지 180CM가 넘는 키의 섹시한 글래머 체형에
원숙하면서도 왠지 여우 같은 분위기 때문에 색기가 넘치면서 무척 귀여운 얼굴은
석진이 보기에 남자들의 색욕을 자극시켰다.
우쿄가 단순히 나중에 느끼기에 나중에 수진이 완전히 성장하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우쿄는 너무 놀라서 황급히 떨어져서 완전히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す, すいません(죄, 죄송합니다)!!!!! >
그녀는 우쿄가 엉겁결에 일본어로 사과하자 좀 당황하다가 침착하게
물어왔다.
<あなた, 日本人(당신, 일본인)? >
우쿄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고개만 끄떡였다.
그녀는 뭔가 새삼스러운 듯 흠! 하고 가볍게 한숨을 쉰 뒤,
우쿄에게 자못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大丈夫. 私も不注意したから(괜찮아. 나도 부주의 했으니까)>
우쿄는 그녀의 미소에 더 미안해 하다가 곧 세 사람은 바닥의
서류들을 주워 모았다. 같이 서류를 주워 모아서 두
남자애들에게 서류종이를 받아서 파일에 넣고는 일어나서
싱긋이 웃어 보였다. 귓불의 커다랗고 가는 링 모양의 귀걸이가
섹시하게 느껴졌다
<ところであなた, 大學生みたいに見えないのに? 當たる? (그런데 당신,
대학생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맞아?)>
그녀는 석진은 거의 신경도 안 쓴 채 우쿄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 はい. 大學生 當たります(예. 대학생 맞습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의미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そう. それではあって見よう(그래. 그럼 있다 보자) 。>
그러고 나서 그녀는 석진에게도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어준
뒤 하이힐로 또각 소리를 내며 유유히 가던 길을 가다가 잠시
서서 우쿄에게 내심 궁금해 할 것을 얘기해줬다.
<さて, 私は日本人ではなくて在日だよ (아참, 나는 일본인은
아니고 “자이니치”야.) 。 >
그 후에 우쿄에게 섹시하게 윙크를 해준 뒤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쿄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야. 우경아. 자이니치가 뭐야? >
석진의 질문에 우쿄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아, 재일 한국인. >
<오우!! 정말? 야!! 일본 애에다 재일교포까지 보다니!! 우리 학교,
이제 보니 완전히 리틀도쿄잖아!! 근데 재일교포 중에 저런 얼짱에
몸짱 누님이 있단 말야? >
석진은 그녀에게 홀린 듯이 그녀가 간 방향으로 시선을 거둘 줄
몰랐다.
우쿄는 약간 질렸다는 표정이다.
<미나미노미야南宮상, 우리 수진짱 놔두고 다른 여자한테 한눈 파는
거예요? >
<쳇!! 오라비라고 여동생 생각은, 임마! 사나이 대장부가 한 여자만으로
만족할 수 있니? 근데. 미나미 뭐? 이게 감히 남의 귀한 성씨를 창
씨개명創氏改名 하고 앉았어. 네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관리냐, 어? >
석진은 우쿄의 목을 한 팔로 감아서 조르는 시늉을 했다.
우쿄는 그의 한자이름을 그대로 읽었던 것뿐으로 아무 죄가 없다……
<痛いよ (아파요)!!!!! 그러는 미나. いや(아니) 남궁씨도 툭하면 나한테
우경이라고 부르면서…… >
<엄연히 있는 한국이름 놔두고 쪽발이 식으로 부르기 싫어서 그런다.
문제 있냐? >
<나도 그렇게는 듣기 싫어요. 난 엄연한 일본인이라고요. >
<그려, 잘나셨어!!! >
실은 석진은 그 재일교포 아가씨에게 우쿄가 껴 안기고 그녀가 우
쿄에게만 관심을 보인데 질투심을 느꼈다.
서류 수습을 돕는 한편으로 우연찮게 그녀의 스커트 속을 훔쳐봤던
그였다.
초미니스커트라 한쪽 무릎을 바닥에 짚고 쪼그리고 않는
순간에 스커트 안의 팬티와 커피색 스타킹의 밴드가
옆의 석진에게 보였고 석진에게는 흥분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쿄는 가장 좋은 위치인데도 그쪽으로는 아예 눈길조차
안 준 채 우직하게 서류를 줍는 일에만 열중했다는 게 한편으로
신기했다. 이 녀석은 무슨 부처님 토막도 아니고……
두 사람은 강의실에 들어가 지정 받은 맨 앞자리에 앉았다.
<쳇! 앞자리라니. 딱 걸렸네. >
<특별석이네. 등록금이 아깝지 않겠어요. >
의자에 코트를 걸어놓고 앉으면서 하는 짓궂은 우쿄의 대답에 석진은
얄밉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같은 범생이한테나 특별석이겠지. >
그런데 석진은 그 자리가 자기에게도 특별석임을 곧 깨달았다.
이윽고 강의실로 들어와서 교단에 선 사람이 아까 그 재일 한국인
출신의 미녀였단 것이다.
“오~~~~~~~예!!!!!”
남학생들은 좋아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녀는 잠시 강의실을 둘러보다가 뜻밖이다 는 표정을 짓고
있는 우쿄에게 미소를 지어준 뒤 칠판에다가 세로로 陳美姬라고 썼다.
<여러분의 강의를 맡은 조교수 진 미희입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

<히야!! 그런 미인을 만나고, 대학생활이 첫날부터 잘 풀리는데? >
점심시간이 되어서 우쿄와 함께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석진은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우쿄는 그렇게 좋을까 싶었다.
우쿄도 기본적으로 남자니까 그런 미인이 선생이라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렇게 난리를 칠 일인가 싶은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쿄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만난 여선생들
중에 가장 미인은 고 1때의 담임이었던 카스미로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우쿄의 큰 누나이다.
외가의 가족들부터 심지어 친 어머니에 동생까지 대개 이러니 다른 데서
웬만한 미녀를 봐도 다소 무덤덤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석진에 비해 담담했던 것이고, 그래도 미희라는 조교수는
스타일이 다른 것뿐이지, 거의 같은 나이일 카스미와 대등한
수준의 미모임에는 틀림없었다.
굳이 평가를 하자면 카스미는 청순미와 여성미가 그녀의 매력이라면
조교수는 헤어스타일이나 기타 스타일 등이 상당히 남성적이고 그러면서도
아니, 그런 점이 오히려 섹시하고 관능적이라 할지……
그러고 보면 우쿄는 여성에 대해 한가지 버릇이 자기도 모르게 웬만한
미인을 보게 되면 꼭 누나들과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작정하고 여성을 평가하게 되면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정말 미인이라고 생각되는 여성은 어이없게도
친 엄마인 미코와 여동생인 수진 정도였다.
물론 심한 정도가 아니면 예쁘다, 아니다 하는 문제는 우쿄로서는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실은 민족적인 정체성만큼이나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에 대해서도 -자신이
정상적으로 여자를 좋아하는지 아닌지조차- 자신이 없는 상태였다.
어른들한테는 비밀이지만 지금껏 몇 번이나 성추행을 당했었고 그 중에
대부분 같은 남자한테 당했던 데다 최근에 당했던 것에서는 몸이
뜨겁게 반응했었기 때문에 자신이 동성간의 성접촉에도 거부감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우쿄로서는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고 1때 다른 반에서 남자애들끼리만 모여서 소위”인기 있는
오나펫 투표”라는 걸 했는데 카스미가 1위였다는 걸 그 반에 속했던
세이이치에게 듣고 격분했었지만 곧 이어서 여자도 아니고 같은 남자인
자기가 3위를 했다는 데에 할 말을 잃었다가 한동안 그 반은 피해 다녔던 일이 있었다.
물론 일본이니까 있었던 일이지, 한국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고
정작 -졸지에 남학생들의 섹스심벌이 된-카스미는 처음에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느껴졌다는데 -좀 놀랐지만 사춘기의 남자아이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고 무슨 일을
당했던 것도 아니어서 미코에게 농담으로 그 얘기를 할 정도로 웃어넘겼지만…….
구내식당에서 석진은 정식定食을, 우쿄는 유부 가락국수를 선택했다.
석진이 보기에 그만한 양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겠다 싶은
우동이지만 우쿄로서는 실은 이것도 약간 많지 싶은 양이다.
쿠폰을 사서 배식 대에서 음식을 받은 뒤 마주앉아 음식을 다 먹을
쯤에 옆의 상급생이 식사를 마치고 읽고 있던 스포츠신문을 놓아둔
채 자리를 떴다. 석진이 그 신문을 펼쳐 읽다가 역시 식사를 마치고
집에서 보온병에 담아온 엽차葉를 보온병 두껑에 따라 마시고 있던
우쿄에게 짓궂게 웃으며 읽고 있던 것을 보여줬다.
그 기사의 자료사진은 상당히 선정적인 미국 금발미녀와 일본
아이돌 스타의 누드사진이었다.
우쿄는 그걸 보고 얼굴이 빨개지더니 살짝 손끝으로 입을
가리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とにかく最低よ(하여간 저질이야.)。>
<너도 좀 여자나 이런데 관심 좀 가져봐라. 뭐니, 아까
조교수님한테도 무덤덤하고, 야동 좀 보여주면 불결하다고
도망가버리질 않나…… >
우쿄가 석진한테 느낀 재미있는 점은 상당히 색을 밝히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자기보다 4살이나 어린 수진을
여자친구로 삼았으면서도 간간히 다른 여자들한테 한눈을 팔고 야한
동영상이나 사진 같은 걸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잔뜩 수집하는걸
즐긴다는 점인데 우쿄로서는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밉지 않게 느껴졌다. 좀 짜증스러운 점이라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성적인 편견을 담은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한번은 일본에서는 진짜로 엄마랑 아들이나 남매끼리
“그거-근친상간-”를 하냐는 정신 나간 질문을 해서 우쿄를 경악시키
기까지 했었다.
석진이 물은 게 다 사실이라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변태성욕 자하고
색정광들만 모인 나라가 된다!
한때는 수진이 다른 의미로 위험하다 싶어서 어줍잖게 라도 오빠로서의
입장으로 석진과 수진의 교제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까지 했을 정도였다.
뭐, 다행히 석진이 수진한테 쥐어 사는 형국이고 석진이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이니 그나마 안심이고 우쿄도 석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석진은 우쿄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고 더 놀려주고 싶어졌다.
신문을 더 훑어보다가 짓궂은 표정으로 냅킨을 물로 적셔서 상을 닦고
있던 우쿄에게 들이댔다.

“진정한 남자로 만들어 드립니다. 정력 남 클리닉……”

우쿄는 그걸 유심히 보고 처음에는 어이없어하다가 곧 이어서 극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あちらに片付けて(저리 치m)!! >
석진한테 벌컥 화를 내고는 그릇이 든 쟁반을 들고 퇴식대로 향하면서
투덜거렸다.
< 何よ, あのバカ(뭐야, 저 바보)!! >
석진은 괜히 미안해졌다. 우쿄는 -잠깐 한국의 고등학교에 다닐 때조차
선생들의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고집스럽게- 필기는 무조건 일본어와
한문漢文으로만 해왔지만 한국사람들 앞에서는 어학실력이 허용하는 限
일본어를 안 쓰는 편으로 석진의 앞에서 일본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이 나빠졌다는 의미였다.
식당 밖으로 나가는 우쿄를 석진도 퇴식대에 그릇을 반납하고 따라 나섰다.
우쿄는 화장실의 세면대에 서서 양치질을 하려고 가방에서 휴대용
세면가방을 꺼내고 있었다.
우쿄는 석진을 곁눈질로 흘겨보다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흥! >
<야. 미안하다! 그냥 웃자고 보여준 건데……>
<笑おうと見せてくれたのですって? それがすまないという話で終わらせる
事ですか? (웃자고 보여준 거라고요? 그게 미안하다는 말로 끝낼
일이에요?)>
<(일본말은 아직 다 알지도 못하는데……뭐라는 건지 모르겄네;;;;)
아, 알았어!!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 됐지? >
석진은 익살스럽게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빌었다. 웬만한 사내녀석이라면
거리낌없이 험한 말을 하고 심지어 주먹이 오고 갔겠지만 우쿄는
도무지 같은 남자라는 생각이 안 들어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석진은 지금까지 우쿄에게 무의식적으로 여자를 대하듯 하면서 은근히
남자로서 우월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도 우쿄가
여자아이로 착각될 때가 있어서 잘못하면 뭔 사고 치지 싶어서
자신에게도 우쿄 본인에게도 우쿄는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을 시키기
위해 이런 짓궂은 짓을 한 것이다. 여자 누드 사진은 (그렇게 성에
개방적이고 호색적이다는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여자한테
무관심한 우쿄를 자극시켜 주려고 그런 거다 쳐도 남성 클리닉은 경솔한
짓을 한 게 분명했다. 석진으로선 거의 여자나 다름 없는 외모나 심성을
가진 우쿄에게 그런 데에 은근히 콤플렉스가 있다는 걸 약간
고의적으로 건드린 게 불찰이었다.
우쿄는 냉정하게 팔짱을 끼고 석진을 올려다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악의가 없다는 걸 알기에 속으로 이쯤에서
용서해주자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단단히 삐친 척 하기로 했다.
(어휴~난 이제 죽었다! 수진이 고것이 제 오빠라면 껌뻑 죽는데,
이 사실을 안다면 날 잡아먹으려 들 거야!
아니, 왜 난 이 녀석한테만 이렇게 사고를 쳐대지? 아~~씨X)
석진은 자신의 경솔한 치기를 자책했다.

오늘의 강의가 끝난 뒤 우쿄는 -석진이 사과한다고 한턱 쏘겠다는
걸 거절 한 채-학교의 도서관에 가보기로 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1년 지나 한국의 고등학교로
옮기면서 우쿄의 주요 관심사 중에 하나는 늘 이 학교의 도서실이나
도서관은 어떤가 하는 것이다. 우쿄는 독서 광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웬만한 도서관보다야 규모가 훨씬 크지만 문제는 내용물이었다.
일본어 서적이 좀 있으면 좋겠는데…………

도서관에 자료를 대출받으러 갔던 혁은 처음에 자기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진심이긴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다니, 저렇게까지 순진할
수가!! >
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전에 우쿄의 방에서 사진에서 본 우쿄의
모습과 같은 교복(?)비슷한 정장차림의 우쿄였다. 저 녀석은 어찌
저렇게 귀여울 수가 있을까?
상의의 칼라위로 가는 띠로 보이는 와이셔츠의 칼라가 단정했다.
키는 작지만 가냘프고 다리가 상대적으로 길어서 옷차림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우아優雅하고 기품 있었다. 한편으로 아직 어린 남자아이
같아서 무척 귀여웠다.

우쿄는 컴퓨터로 검색한 서적목록을 받아 적은 메모지와 책장 안의
서적들을 번갈아 보다가 제일 위 책장의 책을 보고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게 좀체 손이 안 닿았다. 우쿄에게는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 もうちょっと(조금만 더)……>
까치발을 하고 신음소리까지 내면서 손을 있는 대로 뻗어서 책을 집으려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우쿄가 꺼내려던 책은 고대 한일관계사에 관한 책이었다.
혁은 살짝 다가가더니 우쿄가 꺼내려는 책을 꺼내줬다.

<아네, 감사 합…… 선배님!!!>

<이 책을 꺼내려고 했니? >

우쿄는 혁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반색을 했다.
두 사람은 책을 대부 받은 뒤 학교를 나와 앞의 건물의 2층에 있는
카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었다.
아늑한 분위기의 좌석은 창가 쪽이어서 학교 앞의 풍경이 다 보였다.
처음 우쿄가 도서관에서 대출받은 책들에 관한 얘기로 시작했는데 대개는
고대 한국사에 관한 책들이었고 자연히 주제도 그쪽으로 쏠렸다.
놀랍게도 일본 쪽의 역사교과서에서 알기 힘들거나 잘못 알 수 있을
내용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단, 일고 있다는 것도 그뿐으로 서로 내용이 틀릴 때는 서로 내용상의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 생각해 두기로 하고 판단은 미뤄둔 상태였다.
단지 그뿐이다.
어쨌든 혁은 소년의 높은 지식수준에 감탄했다.
<한국에서 이모부가 책 같은 걸 많이 보내줬었거든요.
중고등학교용 한국사 교과서도 있었고……>
<이모부가? >
<아, 아니, 아버지가요…… 지금도 간혹 헷갈려요.>
우쿄의 표정에 약간 쓸쓸한 미소가 돌고 있었다.
혁은 그 순간에 우쿄의 얼굴에 약간 그늘이 지기 시작함을 느껴야 했다.
주스 잔을 양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우쿄는 착잡하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10여분 뒤 겨우 들릴까 말까 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率直に何が當たるのか分からないです。
(솔직히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
지금까지 한국말로 그럭저럭 잘 말하다가 느닷없이 일본어가
나오자 혁은 약간 당황했다.
<뭐가 헷갈리니? >
< どっちを本當の私の親に思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
私は本當にどの國人で住ま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
そのまま日本人で住んではいけないのか……
(어느 쪽을 진짜 저의 부모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난 진짜 어느 나라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건지......
그냥 일본인으로 살면 안 되는 건지.) 。 >
가느다랗게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혁은 처음 은사인 석주와의 만남으로 우쿄의 일을 대충은
알고 있었고 영리한 혁으로서는 석주에게서 들은 얘기만으로도
우쿄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하긴, 어린 나이의 우쿄군에게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
혁 본인도 우쿄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수준의 충격을 겪었다.
혁도 열살 때 어머니를 여의어야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기 무섭게 웬 여자를 데려온 것이다,
그 여자는 혁보다 한 살 아래의 여자아이를 데려왔었고,
그런데 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이제부터 그 여자가 자기 어머니이고
여자아이는 동생이라는 것이다.
혁은 황당했지만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가 자신의 이복동생이고 이미 어머니께서 자신을
낳으셨을 때부터 두 집 살림을 하다가 어머니가 죽자 때는 왔다 하고
그 여자와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을 집으로 들였던 것을 알았을 때
(우쿄는 혁보다 더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도 그럭저럭 순응한 듯 한데)
혁은 아버지에 대해 격렬한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혁은 급격히 삐뚤어져갔고 곧 이어서 집에서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 결과 고등학교 때에는 외가가 있는 마산으로 쫓겨나듯 내려왔고
거기서 우쿄의 친아버지인 석주를 담임으로 만나서 갱생生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 혁은 스스로의 상상으로 아버지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은 채 조직폭력배라도 돼서 범법자의 길을 갔을 것이 분명했다.
실은 지금도 의붓어머니와 이복동생과는 표면적으로나마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아졌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 때 마산으로 쫓겨 내려간 이래 서울의 집에 방문하는 일은
있어도 이틀 이상 머문 일이 없었다.
서울로 다시 돌아와서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도 하숙집과 제대 후에 지금 기거하고 있는
-부친 소유의- 오피스텔 원룸에서 혼자 살아온 것이다.
안 그래도 엽색행각 등으로 어머니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줬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멀쩡히 살아 있는 동안에 다른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는
데 대해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혁도 준수한 외모 등으로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젊은 나이가 무색하게 여성경력은 화려하지만 한가지 원칙은 분명했다.
한 명 이상은 사귀지 않고 양다리는 절대 피하며 끝내더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안 주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이 자신의 옛 일들을 이야기 해주고서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 私はご両親仕事に對しては無駄な苦情でしょうか? 両方皆好きな方だから
幸せな惱みをしているという (저는 부모님 일에 대해선 괜한 투정인가요?
양쪽 다 좋은 분이니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
<글쎄, 실제로 그럴 지도 모르지, 내가 아는 친구가 그러더군,
좀 가난하더라도 성실하고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좋은 부모를 두 분씩이나 있으니 행복하다 할지도 모르지만 내 쪽은 의외로
단순 명쾌하니까 오히려 내가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건지도 몰라…………
심각한 정도는 우쿄군이 더 하겠지. 양쪽의 부모 중에 한쪽을 매정하게
버릴 수도 없고 거기다 정체성正體性 문제도 있으니까………
원래의 부모만을 우쿄군의 부모로 인정하려면 친부모, 특히 한국인인
친아버지가 걸리고, 그렇지만 한국인 친 아버지의 친척들 때문에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존재가 부당하게 부정당하고
그 때문에 핍박을 받아야 했고 그래서 친아버지는 좋지만 친가는
미운 거고 그래서 친 아버지한테는 내심 미안한 것이고…… >
우쿄는 자신의 처지를 명료하게 지적한 혁의 직관에 놀랐고 그렇다고
당장 명쾌한 답을 얻은 게 아니라서 여전히 답답했다.
혁은 풀이 죽어있는 우쿄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서 어깨를 감싸줬다.
<지금 당장 답을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마음 편하게 먹고 천천히 생각해 볼 일이니까. >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우쿄는 혁이 옆에 앉아서 안아오자 혁에게 고개를
돌려 응시했다.
혁은 그만 경직되고 말았다.
안경 너머의 우수憂愁에 젖은 맑고 깊은 눈동자가 애틋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있었다.

<야, 강민혁이! 오래간만이데이! >
혁과 우쿄 동시에 -혁은 또다시 속으로 아연해하면서-정신을 차리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마르고 큰 키에 모나지 않고 유한
인상의 청년이 아까 우쿄와 석진의 강의를 맡았던 조교수와
카페입구에 들어서서 혁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신영진!!! >
<임마, 니 우째 지냈노? 어? >
<야, 이 새끼! 그러는 너도 안 죽고 살아있었네? 제대하고
복학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사회에 나왔으면 이 형님한테
신고식은 해야 할 거 아냐, 임마! >
서로 툭툭 치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서로 욕을 하고 치고 박는 게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얼굴은
서로 반가워 미치겠다는 표정이라니.
우쿄로서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한국정부에서 발급해준 외국인 등록증을 수령한 작년 4월
이래 한국에서 지낸 기간은 지금까지 총 4달 남짓이었다.
아직 한국인의 풍속 같은 걸 완전히 체득하기는 무리였다.
우쿄가 느끼기에 한국사람들은 너무 거칠고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시쳇말로 개념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심지어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었다.
작년에 처음 서너 달 동안의 한국 적응에 실패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탓도 있었다.
더구나 다정하고 점잖은 신사紳士인 혁에게 이런 일면이
있다는 데 우쿄는 좀 당황스러웠다.
실제로 지금 혁에게 풍기는 온화한 인상으로 과거의 혁이
“사회가 포기한 날라리”였고, 심지어 바로 며칠 전에 3학년생에게 무자비한
징벌을 가했다는 사실은 누구든지 전혀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혁은 이중인격자가 아니다. 한때 엇나간 적이 있고 심중에 과격하고
야성적인 남자가 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화통하고 유쾌한 사람이 있고 섬세하고 유순하며 점잖은 사람이 있고 그에
맞춰야 한다. 여기 영진이 전자고 우쿄는 후자에 속한다.
지금 이 모습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이다.
혁은 영진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그 옆의 조교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래간만이야, 미키씨. 조교수로 임용됐다는 얘기는 들었어. >
<그래? 소식이 빠르네, 민혁씨도 전보다 더 멋있어졌는데? >
혁의 앞에 있는 미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족들이
영주귀국을 한 뒤에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일본으로 혼자 돌아가
대학원을 다니기 전에 혁과 사귄 적이 있었다.
영진이 우쿄를 보더니 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중삐리는 누구고? 니 조카가? 설마 니 아들은 아닐 테고? >
미희도 우쿄를 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어줬고 우쿄는 일어서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임마! 내가 그렇게 나이가 많냐? >
<니 마산에 내려오기 전부터 카사노바로 날렸다 아이가, 짜샤!!
한 14~5살 때 제대로 사고 z으믄 이 정도 아들 내미는 있었겠다.
않그렇습니까, 조교수님!>
영진은 미희에게도 고개를 돌리며 번죽거렸다.
미희는 오후에는 대학원에서 영진의 강의도 맡고 있었다.
미희는 우습다는 표정을 보였고 혁은 실소했다.
<어이!! 이 애는 겉보기는 이래도 대학생이거든?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이야. >
<에이~~ 무슨 소리 하노? 아무리 봐도 이제 중핵교 올라갈까 말까 하게 생겼구만!!>
<사실이야!! 이번에 내가 강의를 맡은 신입생 중에 한 명이거든. >
미희가 믿지 못하는 영진에게 사실을 확인해줬다.
<어, 그렇나? 아유!! 몰랐네. 너무 어려 보여서리. 이거 미안해서 우짜노? >
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우쿄에게 미희와 영진을 소개했다.
<그렇다면 여기 이 누나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테고, 이 형은 내 고등학교 동창.
아 그래, 나랑 같이 권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아주셨지. >
<처음 뵙겠습니다. 사오토메 우쿄입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
우쿄는 정중히 인사를 했다.
영진은 우쿄에게 악수를 청하며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 あ, 君が日本から來たというその秀才だったな, 嬉しい, やあ!
一度見たかったが
(아, 네가 일본에서 왔다는 그 수재였구나, 반갑다, 야! 한번 보고 싶었는데……)>
영진은 지금 자기가 쓰고 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우쿄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일본어로 응대해줬다.
< 그런데 권 선생님이라니, 설마 고등학교 때 우리 담임이었던 “돌기둥石柱”
권 선생님 얘기는 아니겄쟤? 야하고 뭔 상관 있나? >
< 지금 서울에서 근무하고 계셔. 아, 그러니까…… 이 친구가 지금 권선생 댁에서
기거하고 있거든. >
<아, 돌기둥 선생께서 지금 서울에 계시나? 언제 전근하신 기고? 한번 인사
드리러 가야겄네? 근데 그 분께서 우예 일본학생을 받으실 생각을 하신 기고?
희한하네이~~ 쪽발……아, 아니 일본사람이라면 거의 갈아 마실 것 같던 양반이? >
<처가가 일본이라서 거기 친척 애를 맡게 되셨다나 봐……>
혁으로서는 우쿄와 권선생의 관계를 설명하기가 복잡하다는 느낌도 들고
괜히 우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쿄로서는 차라리 그 편이 좋았다. 우쿄는 잠시 뒤 자리를 떴다.
<선배님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얘기 계속 나누세요. >
<그럴래? 그래. 다음에 또 보자. >
혁은 내심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우쿄와는
좀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영진과 미희만 있게 하고 카페의 현관까지 따라갔다.
카페 앞에서 우쿄는 잠시 혁을 보고 얼굴을 붉히더니 약간
주저하며 얘기를 했다.
<죄송했어요. 이상한 소리를 해서…….>
혁은 아랫입술을 융기시켜서 턱에는 주름이 지게 만들고 윗입술이
코를 덮게 하다시피 하게 만들고는 우쿄의 어깨에다 한쪽 손을 얹었다.
<고민이 있다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나한테
얘기해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혼자 담아두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않겠니? >
우쿄는 수줍게 웃어 보이며 인사를 하고는 계단을 내려갔고 혁은 손을
흔들어주며 배웅해줬다.
혁의 생각에 방금 한 말이 주제넘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우쿄에게
심적인 고통이 있다는 걸 안 지금, 그리고 석진한테 들은 바로는 자기 속내를
그렇게 쉽게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라더니
자신에게는 의외로 쉽게 자신의 속내의 일단을 드러내는 걸 보고
우쿄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한편 우쿄는 기뻤다.
우발적으로 속에 응어리 진 고민 중에 일부를 혁에게 털어놓고
말았는데 혁은 그 고민을 들어주고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생각되자 은연중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느낌이었다.
친부모인 석주와 미코도 있다지만 부모한테까지 할 수 있는 말이나
생각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고 사안이 사안이라 오히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던 참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고민 같은 건 가족들에게 얼마든지 털어놓아도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석진의 경우 쾌활하지만 점심시간의 일에서처럼 성격이 다소 경솔하고 의외로
단순해서 쉽게 속내를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쿄로서는 그 어떤 것이든
얽매임 없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고 제 3자의 입장에서 그걸 들어주고
이해해줄 사람이 간절했다.


우쿄를 배웅하고 혁은 자리로 돌아왔다.
<참, 귀여운 아이야. 수업태도도 다른 학생들보다 진지하고……. >
미희는 창으로 우쿄가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침부터 예의주시한
우쿄의 모습을 얘기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강의시간 동안 다른 남학생들이 미희-의 얼굴과 정장 상의를 벗고 있어서
남방 윤곽으로 드러난 몸매-거유에 가까운 풍만한 가슴과 대조적으로 가는
허리-와 스커트 아래의 그녀의 각선미-만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쳐다보는
동안 우쿄는 묵묵히 칠판의 내용이나 미희가 말하는 내용 중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필기하면서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던 게 미희로서는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맨 처음에 강의 파일 안의 교재용 프린터 物을 같이 주우면서
석진이 자신의 다리와 스커트 안을 홀낏 보는 동안 우쿄는 종이를 줍는
데만 열중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미희의 입장에서는 비록 어린 꼬마지만 우쿄의 지적知的이고
조용하면서 성실하고 우직한 모습이 이런저런 일로 남자한테
약간 질려있었던 그녀에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실은 나도 저 애보고 한눈에 반했었어. 웬만한 여자보다도 너무 예쁘고 해서…… >
<야!! 니가 무신 고대 그리스 사람이가? >
<고대 그리스? >
<글마들은 이쁜 남자애만 보믄 멀쩡한 놈들도 호모들이 돼서 하악하악 댔다 안카나?
소크라테스가 지 제자들 중에 알키비아데스란 애하고 그랬었다 카데. >
혁은 얹잖은 표정을 지었다.
< 거, 말이 좀 심하네!! 그냥 순수하게 귀엽다고는 생각하는 것뿐인데…...
아, 남자애한테 귀엽다거나 예쁘다고 하면 실례인 거 아냐? >
<어머! 요즘에는 일본 같으면 그렇지도 않나 봐요. 귀여운 건 귀여운 거니까요. >
혁은 그저께 밤의 꿈이 다시 생각나 쓴 웃음을 지었다. 행여 꿈에서라도 그랬다는
얘기를 했다간 미친 놈이라고 욕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라면 혁이 우쿄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욕정이 어느 정도는 용납되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자 뭔가
아쉽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가 내심 놀라서 엉겁결에 고개를 저었다.
우쿄는 같은 남자이고 더구나 미성년자이다.
어느 쪽이든 혁의 연애대상은 절대 아니었다.
<아 맞다. 우리 간만에 만났는데 한잔 꺾어야 안 하겠나? >
<주말도 아니고 월요일에? >
<뭐, 어떻노? 조교수님도 괜찮지 예? >
실은 친구들 사이에 주호酒豪라고 정평이 나 있던 혁도 근래 술을 마신 일이 없었다.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궁상은 그의 성격에 안 맞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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