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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멎을 것 같은... - 17부
16-03-25 14:10 5,507회 0건
언제까지 날 바보로 만들 셈인가. 언제까지 내가 병신 같은 연기를 하며 정해와 수남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화가 난다. 분노가 치밀고 기분이 엿 같다...

“......”
“그런데 형부는 안색이 정말 좋지 않아요. 어디 아프세요?”

은정이 나의 표정을 보고 걱정이 되었나보다. 오늘 처음 만난 나에게 관심을 주는 은정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그냥 흘러가는 빈말에 불과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저 녀석, 분위기 잡으려고 하는 행동이니까.”
“네? 형부가 왜 분위기를 잡아요?”
“예쁜 여자만 보면... 특히 은정씨처럼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저 녀석 분위기 잡아요.”
“에이, 설마요.”

수남은 나를 같잖게 보는 듯하다. 만만한 사람이 나였을까? 수남의 말에 참고 있는 나의 분노가 폭발직전이 되었다.

“그만 해, 이 자식아!!”
“쿵!”

너무 화가 난 나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수남이를 향해 큰 소리를 쳤다. 그 때문에 여자들이 놀랐고 수남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직시한다.

“너 왜 그러냐?”
“......”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냐?”
“후아...”
“병철아, 네가 소개팅 해준다고 나를 불렀지?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왔고. 그런데 네가 나한테 소리를 지르며 그만하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윽...”
“소개팅 자리에서 그만하고 나는 일어날까?”

수남의 말에 정해가 수남의 팔을 잡으며 애원하듯 말을 하기 시작한다.

“수... 수남 오빠, 진정하세요. 우리 오빠가 지금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정해가 나의 흥분에 수남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는 행동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에잇! 씨팔... 짜증나!”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식당 밖으로 향했고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쓰고 쓴 담배 연기가 입에서 흘러 나가고 답답한 내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항변할 수 없는 것이 속상했다.

“쓰읍... 후...”

막연한 담배 한 가치... 차라리 빨아들이는 이 연기가 까만색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폐를 지저분하게 만들고 혈액이 순환되지 않아 심장쇼크라도 일으켰으면 좋겠다. 그대로 죽고 싶었고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오빠!”

정해는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런 정해를 바라보는 게 싫어 나에게 따지듯이 내 이름을 부르는 정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해가 내 옆으로 다가와 내 팔을 잡고 묻는다.

“오빠 오늘 이상해요. 도대체... 도대체 왜 그러세요?!”
“뭘?”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잖아요!”
“......”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잖아요!’라는 말에 또 다시 뚜껑이 열리는 기분이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내가 본 그 광경은... 너와 수남이가 테이블 밑에서 나와 은정이만 빼고 즐기고 있던 그 행동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지? 너에게 묻고 따지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않고 참고 있는 내가... 내가 더 불쌍하지 않니?!

“됐어, 은정이에게 오늘 소개팅은 없었던 거라 전해. 그리고 이제 집에 가자.”
“오... 오빠!”
“당장 가방가지고 나와! 집에 갈 거야.”
“......”

큰 실망이라도 한 표정으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정해가 터벅터벅 식당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런 정해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병신... 또 여자의 연기에 여린 내 심리가 발동한 모양이다.

“정... 정해야.”
“......”

식당 안으로 걸어가던 정해를 불러 세우자 힘없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다. 살짝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대꾸를 하는 정해.

“왜요...”
“아... 나도 내가 지금 왜 이런지 잘 모르겠어. 아까... 아까 소리를 질러서 미안해.”
“......”
“하... 하지만... 나는 지금 너무...”
“됐어요. 집으로 가요...”

변명이라도 하는 내 말을 무시하며 정해가 다시 식당 안으로 향하고 그런 내 마음이 찢어지듯 아파왔다. 정말... 심장이 멎을 것 만 같았다.

“언니, 형부... 화가 많이 나셨어요?”
“미안해. 오늘은 이쯤에서 헤어져야겠어.”
“언니...”
“제수씨, 병철이 저 녀석 왜 그래요?”
“모르겠어요. 저도 잘...”
“......”

까만 내 속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싶었다. 복받쳐 오르는 이 감정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진정시킬지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핀이라도 맞아야 할 판인데...

“째깍... 째깍...”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은 조용하기만 하다. 창밖을 바라보는 나와 내 옆에 앉아 있는 정해, 자신의 트럭을 운전하는 수남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조용한 수남의 트럭은 어느새 동네 골목에 도착을 한다.

“끼이익.”
“다 왔어요. 내리세요.”
“네.”
“......”

우리는 차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걷는다. 가로등 불에 의지하며 어두컴컴한 밤길을 걷던 우리. 집 앞에 도착한 나와 정해가 집 안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그때 수남이가 나를 부른다.

“병철.”
“......”
“넌 나랑 얘기 좀 하자. 제수씨는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병철이랑 얘기 좀 할게요.”
“네. 오늘 죄송했습니다. 그럼...”
“쉬세요.”

나와 수남이 만을 남기고 정해는 집으로 들어선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수남이가 나에게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연다.

“개새끼가... 너 사람가지고 장난을 치냐?”

그냥... 그냥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면 아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남이가 내 어깨를 잡고 한 말이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사람가지고 장난을 친다는 말은 수남이 네가 할 말이 아니었는데...

“뭐... 뭐라고?!”
“!”
“이 개자식!”
“퍽!”
“윽...!”

나의 주먹이 수남의 얼굴에 정통으로 가격을 했다. 그 주먹은 아무 의미가 없는 주먹이 아니었다. 분노와 배신 그리고 연기를 하고 있는 수남의 응징이었다. 수남이가 내 주먹에 맞고 쓰러지자 부들거리는 온 몸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 이 자식... 내 몸에 손도 대지마!”
“큭... 병철이 너...”
“어디서 이런 고약한 짓을 하는 거야?! 너라는 새끼가 내 친구라는 자체에 화가나!”
“......”
“다시는 얼굴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아들어?!”
“큭큭큭... 큭큭큭...”

화가 난 나의 호통에 바닥에 누워 듣고 있던 수남이가 웃기 시작한다. 입가에는 나의 주먹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큭큭큭... 야, 병철아. 너... 많이 컸다?”
“어렸을 때부터 너보다 키는 컸거든?!”
“병신... 네가 나에게 왜 이러는지... 나도 알고 싶은데. 말해 주면 안 되냐?”
“그... 그건... 네가... 네가!”

모든 것을 말하고 밝히고 싶었다. 정해와의 관계, 내가 목격한 모든 상황과 모습들을 수남이에게 말하고 수남이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길 원했다. 하지만...

“오... 오빠...”

정해는 우리의 소란에 집 밖으로 나와 현관문 앞에서 쓰러진 수남을 바라보고 있었고 눈물을 흘리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철... 오빠...”
“빌... 빌어먹을...”
“킥킥킥... 하하하!”

우리의 애매한 삼각관계... 확실하지 않은 관계 청산이 필요했던 순간이다. 쓰러져 웃는 수남의 웃음은 이 모든 것이 즐거워 보였나 보다. 나는 그들에게 조롱당하는 심정이다.

“왜... 왜 그러세요... 오빠...”
“킥킥킥...”

구린 웃음이 내 귀에 번진다. 그 웃음과 정해의 서글픈 눈물이 무의식의 내 감성을 괴롭힌다. 잔인한 상황에 놓인 나는 대처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정... 정해야...”
“오빠... 병철 오빠... 오늘 도대체... 왜 그러세요...”
“내... 내가... 내가 이상해 보이니?”
“오빠는 원래 이런 분이 아니셨잖아요.”
“......”

흐느끼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정해의 얼굴을 보니 내가 정말 한심하고 멍청한 놈이라는 것을 느낀다. 순수함은 사라지고 의심과 고통에 휩싸인 정신병자와도 같은 느낌이다. 정해를 달래주고 싶었다. 울지 말라고... 울면 안 된다고... 바닥에 쓰러진 수남이를 이해하면 절대 안 된다고...

“정말... 오빠에게 실망이에요.”
“뭐... 뭐라고?”
“오늘 하루, 얼마나 제가 행복했는지 몰라요. 오랜만에 고향 후배도 만나고 오빠와 함께 날씨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에 감사했어요. 수남 오빠에게 소개팅도 해주던 오늘... 저는 정말 행복했다고요.”
“......”
“그런데... 그런데 오빠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저는 혼란스러워졌어요. 어떻게 오빠를 이해해야 할지... 어떻게 오빠에게 다가가야 할지...”
“정해야, 그건... 네가 뭔가 잘 못...”
“싫어요. 오빠의 구질구질한 변명을 듣는 건.”
“구... 구질구질...?”
“실망이에요. 오빠라는 남자에게...”
“!”

내가 구질구질한 남자였던 말인가? 내가... 정해에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할 남자였단 말인가. 나는 그저... 내 사랑, 내 여자를 지키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런 내게 구질구질이라는 말까지 해가며 실망했다는 정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쓰러져 있던 수남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말한다.

“얌마, 이제 어떻게 할 거냐?”
“......”
“제수씨... 화가 많이 났는데... 너 때문에 오늘 마음에 든 여자도 놓치고. 어떻게 할 거냐고.”
“몰... 몰라...”
“몰라? 이 새끼... 정신 나간 새끼.”
“이건 다 너 때문이야.”
“그래, 그래. 다 나 때문이라고 하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

수남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수남이 웃으며 대답한다.

“집에 술 있냐?”
“왜?”
“술이나 한 잔하고 기분 풀자고. 우리가 하루 이틀 만난 사이도 아니고.”
“......”
“안주가 없으면 내가 중국집에 배달시킬게. 돈도 내가 낼게.”
“......”
“우리가 술 한 잔하면서 기분 풀어야 제수씨 기분도 풀릴 거 아니야. 그래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거고.”
“미친...”
“야, 춥다. 빨리 들어가자.”

춥다며 내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는 수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재수 없는 새끼가 말주변만 있어서 나대는 꼴이라니.

“아 참, 병철이 너... 주먹이 꽤 아프다?”
“병신새끼...”
“알았어. 욕 좀 그만하고 빨리 들어가자. 춥다.”
“......”

집 안으로 들어서자 정해는 이미 이불을 깔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누워 있다. 나보다 먼저 우리 집으로 향한 수남이는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내가 집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 제수씨, 제수씨...”
“응? 수... 수남 오빠?”
“저 아직 안 갔어요. 병철이랑 소주 한 잔 하면서 화해 하려고 왔어요.”
“정... 정말요? 오빠...”
정해는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냥 씁쓸한 표정만을 지었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바닥에 앉는다. 뒤따라 수남도 방으로 들어와 중국집 전화번호를 찾아 안주가 될 만한 음식을 주문한다.

“제수씨, 집에 술 있다고 해서 빈손으로 왔어요.”
“아... 네. 금방 차려 드릴게요.”
“고마워요.”
“......”

나는 한 쪽 벽을 향해 등을 돌려 앉아 있었고 내 뒤에 수남이가 앉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둘이 하는 행동을 전혀 볼 수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내 눈에 보이는 광경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수남이가 술상을 차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선 정해의 한쪽 엉덩이를 살짝 터치하는 광경이다. 그걸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바라보는 벽에 걸린 큰 액자의 유리를 통해서다. 유리를 통해 반영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
“야, 이제 그만 돌아 앉아 봐.”

너 같으면 돌아앉겠냐?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분위기 파악도 안 된 녀석이 정해 엉덩이를 또 터치를 해? 미쳐 버리겠다.

“제수씨는 우리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원하실 거야.”
“그래서?”
“네가 나에게 서운 한 게 있었다면 모두 풀고 나도 너에게 서운한 감정을 들게끔 한 게 있다면 풀자는 거지.”
“지금은 풀 수 없을 것 같은데...”

도저히 수남과 이일을 풀 수는 없었다. 수남의 제안을 거절하는 내게 정해가 말한다.

“오빠, 수남 오빠 말처럼 이제 그만 화 풀어요.”
“......”
“오빠가 오늘 수남 오빠와 화해하지 않으면... 저 정말 화낼 거 같아요!”
“정... 정해야.”

정해의 뜨끔한 협박 소리가 내 귀에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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