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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욕의 세계 (野慾世界) - 8부
16-03-09 02:01 6,369회 0건




다음날, 수라는 산부인과를 다시 찾아갔다. 접수대에서 원장을 찾으니 간호사가 2층 원장실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기겁할 만큼 놀랐다. 벽지는 온통 밝은 핑크색 톤에 가구들은 화이트 공주풍이었다. 흡사 동화속 공주집을 옮겨놓은 듯 했다. 더구나 원장 차갑대가 입고 있는 옷은 더 가관이었다. 어제는 의사가운을 걸치고 있어 패션 스타일을 몰랐는데 오늘 보니 공주 중독증 환자였다. 몸에 착 달라붙는 레드 블라우스에, 소매와 깃에는 화이트 플라워 레이스가 달려 있었고, 갖가지 진주와 보석이 블링블링했다. 어지간히 예쁜 여자가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옷을, 것도 남자가 입고 있었다. 저런 큰 남자사이즈를 어디서 구했나. 신기할 정도였다.

“앉아요.”

갑대는 홍차를 준비하면서 수라를 슬쩍 보고는 앉으라고 권했고,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그녀의 패션을 보고 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뒤로 묶은 포니테일 머리에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회색 후드티와 구겨진 검정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흰 양말과 검은 샌들을 신고 있었다. 상상하기도 힘든 최악의 여자패션을 현실에서 본 것이다. 하루 만에 이렇게 바뀔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여성스러움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런 걸 내색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싱가포르 TWG 그렌드 웨딩 티입니다. 향이 아주 좋아요.”

갑대는 예쁜 찻잔에 면 티백 홍차를 담아 수라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멀리서부터 좋은 향이 났다. 그러고 보니 원장실 또한 남자가 사용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했고 달콤한 향이 났다. 그런 생각들로 주변을 탐색하며 그녀가 형식적으로나마 홍차를 한 모금 마시자, 그가 작은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뭐죠?”

쇼핑백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현금 이천만원에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골드바들 중에서 1KG 입니다. 못해도 4천은 받을 겁니다. 사실 더 드리고 싶지만 대부분 은행, 펀드, 부동산에 묶여있는 터라 유동성 현금은 많지 않아요. 원하면 다음 달에 더 드릴게요. 아니면 당장 1KG 골드바라도 하나 더 드릴까요?”

돈에 대해 자신있어하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빴다. 마치 거지 동냥하는 말투의 동정이 느껴졌다. 범죄를 저지르고 잘못한 사람은 저인간인데 왜 자신이 비참한 심정을 느껴야하는지 몰랐다. 부자에 대한 피해의식일지 몰라도 기분 나쁜 건 분명했다.

“제 말은, 합의금 천만원을 요구했는데 왜 6천만원을 주냐고요!”
“예?”

그녀가 왜 화를 내는지 그는 이해되지 않았다.

“나 돈 많은 남자다. 너 따위가 성추행 좀 당한 게 뭐 대수냐? 6천만원이면 한몫 챙겨서 뽕을 뽑은 거니 먹고 떨어져라. 마치 매춘부 접대비 던지듯 이런 심뽀잖아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는 그제야 어렴풋이 이해했다. 과유불급, 차라리 9백만원 주느니만 못했다.

“퍽도 아니겠다. 기분 나빠서 안 받아요. 이돈 받으면 이제 나는 죄가 없다. 라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킬게 불을 보듯 뻔해요. 차라리 평생 죄를 안고 사세요. 딱 보니, 원장님은 6천만원이라는 돈의 가치보다 죄의식의 가치가 훨씬 클 거 같네요.”

어제의 반복처럼 그녀는 다시 씩씩거리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 ○ ● ○ ●


그 후 열흘 동안 갑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수라의 행적을 찾아다녔다. 그녀는 산부인과인근 연립주택 반 지하에서 동성친구와 함께 살았고, 대학교 1학년 미대생이었다. 겨울방학동안 학비 때문인지 커피전문점 알바를 하고 있었다. 이성 친구는 있었지만 연인인거 같지는 않았고 잘 어울려 노는 활발한 성격으로 보였다.

그런 정보를 얻고 있을 때, 주변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갑대를 보고 수근 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장발헤어와 여성스런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고, 타고 다니는 차가 시트로엥 DS3 핑크로 너무 사람들 눈에 잘 띄었다. 오죽했으면 수라가 진작 그의 미행을 눈치 챌 정도였다. 그러다 이주일쯤이 다 되어서 갑대는 작정하고 수라가 거주하는 연립주택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가 성추행을 신고하거나 협박하는 것도 아니었다. 합의금을 안 받겠다고 하면 오히려 그에게 좋은 거였으니 박수치고 환영할일이다. 그럼에도 집착하는 건 끝을 봐야지 직성이 풀리는 그의 병적인 성격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타세요. 학교까지 태워드릴게요.”

카페알바를 하려고 집을 나서는 수라를 보고 갑대가 차에서 내려 다가가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찢어진 청바지에 와팬장식 야상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그가 이주일 동안 지켜본 그녀의 패션 대부분이 트레이닝복 아니면 청바지에 후드 티나 점퍼였다. 산부인과에서의 첫 만남만 무슨 일이 있어서인지 여성스런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싫어요.”

그녀가 외면하고 지나가려하자 그가 앞을 막아섰다.

“지금 알바 가는 거잖아요.”
“그거 알아내려고 그동안 저 미행했어요?”

그녀는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봤다.

“눈치 챘군요. 조심하려고 했는데.”
“그 꼬라지 차림에 이런 차를 타고 주변을 맴도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죠.”

대한민국에서 핑크색 수입차를 본다는 건 눈에 확 띄고 극히 드문 일이다. 그걸 매일 주변에서 본다면 우연일 수 없다.

“그, 그 꼬라지라뇨? 명색이 미대생이면서 이런 아름다운 러블리 패션을 이해 못한다는 게 경악스럽네요.”

그 또한 언제나처럼 오늘도 진주와 큐빅이 박힌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디테일이 보일수록 진짜 꼴불견인 것은 비침이 있어 이너를 받쳐 입었는데 그 형태가 여성용 실크나시였다. 트랜스젠더가 아니고서야 이런 여성패션을 추구하는 게 그녀는 이해되지 않았다.

“당신의 그 변태적인 정신세계야말로 경악스럽기 짝이 없네요.”
“수라씨.”
“수, 수, 수라씨라뇨? 오! 기분 나빠. 저 지금 온몸에 소름 돋았어요. 제 이름 부르지 마요. 무서워요.”

그녀가 팔을 비비며 팔딱 뛰고 경악했다.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언제까지나 환자는 아니잖아요. 그냥 말 놓을까? 수라? 수라야!”
“됐어요. 그래서 용건이 뭔데요?” “수라씨한테 할 얘기가 있으니 타세요. 가면서 얘기해 드릴게요.”
“그런 차는 안타요.”

그가 시트로엥 DS3 핑크를 가리키자 그녀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손사래를 쳤다.

“왜요? 이거 수입차예요.”
“알아요. 누굴 바보로 아나.”
“그럼 뭐가 문제인데요? 차가 작아서 실망했어요? 큰 차 좋아해요?”
“정말 몰라서 물어요? 도대체 어떻게 살면 그렇게 주변사람시선은 전혀 의식안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수가 있는 거죠?”

그녀가 두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이렇게 답답한 남자는 처음 본다는 눈빛이었다.

“살면서 아주 가끔씩 들었던 말이긴 합니다만.”
“가끔? 항상 이겠죠. 늘!”
“병원에서는 그런 소리 안하던데요.”
“답답한 원장선생님.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죠. 얼마나 주변사람한테 마음을 안 열면 그런 말 한마디를 안 해줄까. 나이 헛먹었어!”

답답함을 넘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변변한 친구조차 없을게 안 봐도 뻔했다.

“좋아요. 그럼 여기서 얘기하죠. 전 지은 죄를 달게 받을 각오가 되었습니다. 함께 경찰서로 가서 절 고소하세요. 자백하겠습니다.”
“싫어요. 관심 끊기로 했어요.”

다시 그날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 듯 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가능하면 용서해주는 쪽으로 안 될까요?”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군요. 용서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결국 자기만족 때문이잖아요.”
“꼭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고 둘 다 만족시켰으면 합니다.”
“지금은 당신을 용서할 마음이 없어요. 그래서 어쩔 건데요?”
“그럼 마지막 제안을 하죠.”
“뭔데요?”
“놀랄 수도 있으니 일단 심호흡을 하세요.”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아끼며 심호흡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저랑 사귑시다. 그럼 제가 속죄하는 의미로…….”

갑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수라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만만해? 너랑 사귈 바에야 차라리 강간범하고 연애하겠다!”

불같이 화를 내다가 도저히 분히 안 풀리는지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가버렸다.


● ○ ● ○ ●


“도대체 저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겁니까?”

다음날 갑대는 다시 가서 알바하려고 나가려는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

“하! 뻔뻔도 이정도면 그야말로 철판이네요. 후안무치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거군요. 그 꼬라지로 다니는데 당신을 좋아했던 여자가 있기는 하던가요?”

그가 또 찾아온 것을 보고 수라는 인상부터 팍 썼다.

“많았어요.”
“돈에 환장한 거죠.”
“그게 어때서요? 저도 당신의 예쁜 외모에 환장했었습니다. 남녀의 만남이 대부분 그렇잖아요.”

낙엽 밟는 소리에도 가슴 절절한 사춘기를 못 벗어났군. 현실사회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남자는 외모로 여자를 고르고, 여자는 돈으로 남자를 고른다. 그런 다음, 나머지 조건들을 맞춰가는 거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 돈에 환장하지 않아요.”
“없는 사람들의 자존심이죠. 그걸 건강한 정신이라고 믿으며 평생 반 지하에서 곰팡이랑 살면서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죠. 아니면 기껏 옥탑방 기어 올라가서 여름에 쪄죽고, 겨울에 얼어 죽겠죠. 그렇게 젊음을 탕진하다가 나이 먹어 할아버지 되면 아파트 경비실이나 하다가 어린놈한테 뺨맞고, 할머니 되면 폐지나 줍다가 골병들어 죽죠. 불쌍하고 한심한 인생들.”
“뭐라고요?”

그녀가 눈에 독기를 품었다. 말을 해도 어쩜 저렇게 얄밉게 할까.

“좋습니다. 그렇다고 하죠. 제 외모는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데요?”
“전부!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그녀는 혐오스런 벌레를 대하듯 삿대질로 지적하면서 치를 떨었다.

“수라씨도 저처럼 외모에 환장하는 타입 이군요?”
“아니요. 그 소름끼치는 패션이 싫다고요. 여자가 그걸 참고 만나줬다면 그건 백퍼센트 당신 돈에 환장한 겁니다.”
“확신하세요?”
“확신해요!”
“참지 않았던 여자가 더 많았습니다. 수라씨 말 대로면 돈만보고 저를 만났던 건 아니네요.”
“오! 참고 만나주던가요?”

꼴에 만났던 여자는 꽤 있나보다.

“아니요. 제가 바뀌길 요구했고, 그래서 전 필요 없다고 차버렸죠.”
“거봐요!”
“수라씨도 제가 바뀌길 바라나요? 패션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원판은 괜찮다는 거죠? 하긴, 제가 원판은 미남이죠.”
“아니요. 나한테 관심 끊어주길 바랍니다.”

그녀는 정말 꼴도 볼기 싫다는 듯 그를 확 밀치고 뛰어가 버렸다.


● ○ ● ○ ●


“엄수라씨!”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갑대가 연립주택 반지하 문을 두들기면서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를 무시하려해도 다른 거주세대 눈치가보여 그러지도 못했다.

“자꾸 이러면 스토커로 신고할 거예요.”

그녀는 어쩔 수없이 문을 빠끔 열고 그를 노려봤다.

“바라는 바입니다. 함께 경찰서로 가죠. 제가 성추행부터 스토커까지 다 자백하겠습니다.”
“우! 이 새디스트 같은 변태!”
“좀 들어갑시다.”

그가 현관문을 잡아당기고 들어가려했지만 문이 ‘덜컹’ 하고 안전 고리에 걸리면서 제지당했다.

“어딜 들어와요?”

그녀가 문틈사이로 주먹을 내밀며 들어오면 죽는다는 시늉을 했다.

“안 들여보내주면 고래고래 소리 지를 겁니다. 못할 거 같죠?”
“됐어요. 제가 나갈게요.”

그가 정말로 소리 지를 거 같아 그녀는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슬리퍼를 신고, 안전 고리를 풀어 문을 연 다음, 잽싸게 ‘쾅’ 하고 닫았다. 그리고는 그를 무시하고 한적한 골목으로 향했다.

“집 구경 시켜주는 것이 그렇게 싫어요?”

그가 뒤따르면서 투덜댔다. 어떻게 사는지 한번 보고 싶었던 눈치다.

“용건이나 말해요.”

인적이 거의 없는 곳에 도착하자 그녀가 돌아서서 귀찮다는 듯 말했다.

“어제 수라씨와 얘기를 나눈 후, 혼자 곰곰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아뇨, 또 그렇게 입고 왔다는 것 자체가 당신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요. 미친 변태 공주병 그대로예요. 헛짓 한 거죠.”

그는 오늘도 앙드레김 같은 패션을 하고 나왔다. 그럴 거면 차라리 패션디자이너가 되지 왜 산부인과 의사가 된 건지 이해가 안됐다.

“제가 수라씨의 아름다운 외모에 한때나마 환장해서 성추행을 했고, 지금은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죄라는 게 등급이 있는데, 용서 못 받을 만큼 죽을죄를 저지른 건 아니잖아요.”
“범죄자들의 자기합리화가 다 그렇죠.”
“최소한 용서받을 기회는 주세요.”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전 피해자예요.”
“제가 불쌍하지도 않나요?”
“그놈의 궤변! 우…… 좋아요. 참회할 기회를 드리죠.”

어디 한번 당해봐라. 하는 표정으로 그를 데리고 동네 미장원으로 갔다.




“여긴 헤어숍이잖아요.”

직감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그가 미용실 앞에서 멈춰 섰다.

“네. 참회와 속죄하는 의미로 머리카락 자르시라고요. 스님처럼 빡빡 대머리로!”
“전 죽어도 머리털 안 자릅니다.”

짐작은 했었지만 정색하는 그의 표정이 정말로 머리카락을 자르기 싫은듯했다.

“굿! 여기서 헤어져요.”

그녀는 더 볼 것도 없이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휙, 하고 돌아섰다.

“들어갑시다.”

그녀의 반응에 그가 욱해서 미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동네 미장원인데도 한산하지는 않았다. 중년 아줌마, 초등학생,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가씨 두 명이 있었는데, 아줌마는 머리를 메두사처럼 만드는 SF 풍경의 세팅파마 기계에 앉아 있었고, 초등학생 아이는 머리 손질을 받으면서도 굉장한 집중력으로 스마트폰 만화를 보고 있었다. 아이 옆에 긴 생머리 여자는 큰 바가지 같은 것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 음이온 스팀주입 중이었고, 친구로 보이는 다른 여자는 볼륨매직을 위한 과정으로 펌제를 미용사한테 도포 받고 있었다.

갑대와 수라가 미장원 안으로 들어서자 젊은 여성미용사가 ‘어서 오세요.’ 하면서 맞이하다가 갑대의 차림새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다른 미용사와 손님들도 고개 돌려 바라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고 호호 거렸다. 그럼에도 갑대는 태연하다 못해 당당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도 내심 주위의 이런 반응이 싫어서 평소 가능하면 병원 밖 외출을 안 하려고 했다.

“이분, 스님처럼 머리카락 하나 없이 빡빡 밀어주세요.”

갑대가 미용의자에 앉자마자 수라가 미용사한테 그를 대머리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미용사는 재밌어 하면서 갑대에게 승낙을 확인했고 그는 주사 맞으러온 아이처럼 울상이었다.

“저, 저기…… 수라씨. 일반적인 남자 머리정도로 안될까요? 대머리는 너무 가혹합니다.”
“안돼요.”
“그럼, 스포츠머리 정도로…….”
“미용사 언니, 광이 나게 밀어주세요. 아! 혹시 왁싱되나요?”

그녀의 눈빛이 복수로 불타오르면서 이글거렸다.

“저, 수라씨, 머리를 왁싱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여기서 제모 왁싱은 하지 않고요. 원하시면 면도기로 제모는 해드릴게요.”

미용사가 나서서 제모를 권했다. 흔히 알고 있는 미용왁스는 스타일용, 스트립용, 코팅용으로 나뉘고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왁싱은 코팅용이다.

“아! 좋네요. 면도기 제모. 그렇게 해주세요.”

수라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치면서 환한 표정을 지었다.

“같이 온 여자 분이 요구하시는 대머리로 괜찮을까요?”

미용사는 수라의 뜻을 받아 갑대에게 친절한 말투로 그리해도 되냐고 물었다.

“예. 하세요.”

완전히 넋이 빠진 영혼 없는 대답이었다.

“아하! 미용사 언니, 하는 김에 눈썹도 밀어주세요. 이분이 변태적인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수라의 복수심은 가지치기를 하듯 뻗어나갔다.

“손님, 여자 분께서 눈썹도…….”
“예, 예, 시원하게 홀라당 다 밀어주세요. 제모에 한이 맺힌 여자입니다. 곧 있으면 제 겨털이랑 사탕바구니도 밀라고 할 겁니다.”

미용사의 친절하고 조심스런 말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갑대가 울컥했다.

“사탕바구니가 뭐죠?”

미용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아, 사탕바구니는요. 가운데 막대기 바가 없는 사탕구니 비슷한 거죠. 어감이 좀 그렇죠? 아무튼, 그러니까 저 여자 사탕바구니에 사면발니라는 벌레가 들러붙었는데, 사탕이 달잖아요. 벌레들이 좋아하겠죠? 그래서 제가 사탕을 밀어 버렸다고 저러는 겁니다. 지금은 달랑 바구니 밖에 없거든요. 허전하겠죠? 그러니 이제 와서 사탕들이 그리운 겁니다. 사탕 없는 바구니라는 게 참 그렇거든요. 산이 있으면 나무가 무성해야 숲이잖아요. 나무들을 밀면 어떻게 되겠어요? 민둥산이 되겠죠? 쓸모없는 산이 되는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탕 없는 바구니가 쓸모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바구니만 있으면 뭐든 담을 수 있어요. 바나나, 소시지, 가지, 오이, 무…… 아! 무는 못 담겠네요. 아직은 바구니가 작거든요. 제가 또 바구니 보는 전문가입니다. 뭐, 노력하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저 나이에 무를 굳이? 그보다 애초에 바구니를 써 본적도 없어요. 지금까지 물만 담았다 부었다하는 바구니만 불쌍한 거죠. 천연기념품이에요.”
“그 입 닫아요!”

수라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자 갑대는 꼬리 내리고 조용해졌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미용사한테 손맛사지 팩을 해달라는 여성스런 모습을 보였다. 손이 예뻐져야 한다며 팩제가 담긴 하얀 장갑을 무릎위 작은 쿠션에 가지런히 올리고, 아무생각 없이 멍한 눈으로 자신의 긴 머리가 대머리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옆에서 그걸 보며 수라는 복수의 희열로 흐뭇한 표정이었다.

“다됐습니다.”

미용사가 제모를 끝낸 갑대의 머리는 흡사 문어 대가리처럼 매끄러웠고 눈썹조차 없어서 외계인 같았다.

“푸호호호! 아…… 눈물 나. 깔깔깔.”

그의 모습이 너무 웃겨 수라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댔다.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것처럼 시원했다. 주변 사람들도 갑대의 눈썹 없는 대머리 모습을 보고 키득 거리면서 웃어댔다.

“자,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써요.”

그녀가 쓰고 온 야구 모자를 그의 머리에 푹 눌러 씌웠다. 둘이 미용실을 나온 후에도 수라는 연신 깔깔대며 웃었다.

“만족하십니까?”
“아뇨.”

‘뭐? 사탕 없는 바구니? 어우 분해! 왁싱샵 데리고 가서 전봇대 남겨두고 주변 잡초를 다 밀어버릴까 보다.’ 그녀는 다음 단계의 복수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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